금요일 저녁 일상

이번 쿼터는 TA 일로 파묻힌 나날들이다. 주 2회 랩 세션 진행하기, 숙제 만들기, 숙제/퀴즈/랩프로젝트/시험 채점하기, 주1회 오피스 아워까지. 이 모든 게 주 10시간이 배정된 TA의 역할이라니 놀라울 따름인데... 일단 하기로 했으니 하고는 있다. 처음하는 일이라 노력이 많이 들고, 더불어 연구를 거의 제대로 못하고 있어서 심적으로도 좋지가 않다. 그렇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유익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간 여기서 겪은 경험들을 돌이켜보면, 박사과정은 어쩐지, 박사 이후에 직면해서 해쳐나가야하는 더 많은 재난적 상황을 모의 연습하는 인큐베이터인 것만 같다.

요즘 나이가 먹었는지 체력적으로 부친다. 특히 목요일 늦은 오후가 되면 낮잠을 자지 않고는 버틸수가 없어지는 상태를 연속 몇 주간 겪고 있다. 저녁부터 다시 일어나 밀린 일을 하면서... 금요일 저녁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매콤한 한식을 먹으러 가야겠다.

코앞에 놓인 일들로 정신없이 바쁘다 하더라도 일상

내 인생의 한 부분을 함께해주는 사람들에게 냉랭하게 대하지 않기를, 특히 내가 챙겨주어야할 사람들에게 되려 비열한 행동은 하지 않기를, 타산지석으로 배우고 있다.

한밤중에 친구들이 보고싶다. 일상

그러나 이곳에서 흐른 시간과는 다른 방향과 다른 속도의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는 아주 다르게 살고 있겠지?

그네와 동요 뜬구름 잡는 생각

일곱살 때였나 유치원에서 점심때쯤 집에 돌아오면 일주일에 두어번은 엄마가 성당 모임에인가 나가 있어서 나는 한 두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내며 엄마를 기다려야 했었다. 아마도 그 시간이 내가 기억하는, 내 생애 처음으로, 나 홀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고요한 집안을 오싹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동요 카세트 테입을 크게 틀어놓은 뒤에, 아빠가 방 문턱에 직접 만들어준 그네를 타곤 했다. 하도 많이 타서 손때가 많이 탄, 동시에 아빠의 창작품답게 아주 튼튼한 그 밧줄을 양손에 꼭 잡고서, 그네가 뒤로 갈 때면 내 뒷편에 있는 장농 문이 열리면서 귀신이나 악마가 나를 채어 잡아가 이 현실세계에서 사라져버리는 상상을 했다. 그네가 앞으로 나아갈때,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손에 땀이 더 삐질삐질 나곤 했다. 그럴 때일수록 카세트 테입에서 나오는 동요를 더 크게 따라부르곤 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는 현관 앞 계단까지도 울려퍼지는 내 우렁찬 노랫소리를 듣고는, 문을 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아이구 우리딸 노래도 아주 참 잘 부르네 하고 매번 칭찬해주셨다. 집에 온 엄마가 집안일로 분주한 사이, 나는 그 오싹했던 장농문을 빼꼼이 열어- 켜켜이 쌓인 이불과 베개, 그리고 내 인형들이 모두 다 그대로 있는지 확인해보곤 했다.

잡생각들 일상

대부분의 전세계인들이 즐겁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를, 아무런 일 못한 채 게으르게 보냈다고 죄책감에 괴로워 하는 것만큼 미련한 것도 없다. 오늘 일을 좀 하려고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려 했는데 모두 문을 닫아서 가지 못했다. 집에서는 집중도 잘 안 되고 어째 의욕도 떨어져서 낮잠을 두어 시간 잤다. 해는 지고 어느새 밤이다. 꼭 이렇게 다들 노는 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에게, 어디어디 가자고 뭘 보자고 맥주나 한잔 하자고 해줬던 사람들- 한국에 있는 사람들 생각이 조금 난다.

한국, 나는 가끔 한국을 그리워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그건 알고보면 절반 이상이 왜곡된 환상인 것 같다. 현재 내 생활에서 주어진 태스크들을 기꺼이 완수해내려 노력하고 있지만, 종종 고되고, 외롭고, 지속적으로 나를 comfort zone에서 꺼내는 노력을 하게 만드는 유학생활이 길어질 수록, 나는 오래전 한국에서 좋았고 행복했던 기억들만 선별적으로 상기시키는 것 같다. 하지만 막상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그곳에 내렸던 내 삶의 뿌리가 이제는 아주 많이 옅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나라 모두에서 나는 이방인이다- 라는 생각이 가끔 들고, 그게 좀 섬뜩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졸업을 하고 직장을 구해 돈을 좀 벌고 그리고 물적 심적으로 여유를 갖춘 뒤 가까운 친구 한둘을 만들고 싶다. 그러면 좀 더 행복할 것 같다. 근데 내 성격이 내향적이고 예민하고 까다로운 탓에- 졸업도 오래 걸리고 친구를 찾고 사귀는 데까지도 오래 걸릴 것 같다. 옛날의 나라면 내 성격이든 상황이든 뭔가를 바꿔서 빨리 원하는 결과를 보려 했을텐데, 나이가 들어가니 나 자신이든 환경이든 바꾼다는 게 그다지 쉽지 않다고 느낀다. 그렇다보니 나도 모르게 내 삶을 타인의 삶을 보듯 관조하며 절반쯤 내버려두는 성향이 생긴 것 같다. 나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너무 비관적으로 또는 낙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는 이 여정을 잘 마무리 짓고, 다른 새 여정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고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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